떡장수를 하는 청년 강쇠(봉태규)는 형과의 우연한 사고로 인해 제대로 된 성기능을 하지 못하는 남정네로 나온다. 밤일 제대로 못하는 강쇠는 온 마을 아낙네들의 놀림거리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음양통달 도사님에게 비책을 듣고 넘치는 양기를 주체 못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변강쇠가 된다.

그러나 영화 속 어디를 찾아봐도 음기가 강한 미녀 옹녀는 찾아 볼 수 없다. 영화 가루지기에서는 ‘옹녀’ 대신 ‘웅녀’가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살펴보면 마을 전체 여자들은 색을 밝히며,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옹녀로 대체되어 이 때 여성들은 성에 당당한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더 나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우리 조상의 모태인 웅녀는 여성의 대표성을 상징하며, 영화에서는 실제 강쇠가 곰인 웅녀와 정사를 벌인다.

여기서 등장하는 곰은 웅녀 곧 인간을 낳은 대지의 어머니로 상징되며, 생명에 근간이 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영화 가루지기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비가 오지 않아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점에 있다. 기존에 전래동화나 민요 등에서 볼 때 비를 내리기 위함이나 마을의 악을 쫓기 위해서 희생되었던 사람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희생되는 사람은 가루지기 변강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기우제를 드리는 주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우제나 제례의식은 모두 남성이 주체가 되어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모든 사회 행위의 주체가 되며, 제례의식 또한 여성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이 때 변강쇠는 남성이되 단순히 여성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남성으로 전락하고, 마을 아낙네들이 모두 변강쇠의 아이를 잉태한 경우도 강쇠는 여자 ‘씨받이’에서 남자 ‘씨주기’로 치환될 뿐이다.

모계사회에서 남자의 정자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종족을 유지하고 본존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에 그칠 뿐이다. 때문에 가루지기 변강쇠는 오히려 여성들의 영웅이 아닌 여성들의 희생양일 뿐이다.

기존 남성들이 자신들의 계보를 잇기 위해 씨받이나 대리모(代理母) 등을 자행한 것을 영화 가루지기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행위주체의 전복을 시도한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 시퀀스에서 나룻배를 묵묵히 젓고 있는 강쇠의 뒷모습은 여성을 무너뜨리는 정력의 왕 변강쇠의 모습보다 여성을 만족시켜 줘야하는 대리부(代理父)로 전락하며, 그 안에서 잘못된 남성의 역사를 반추하게 만든다.

신한솔 감독은 1998년 단편영화 <뺑도나스>로 금관 단편영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 <솜사탕>으로 독일과 방글라데시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또 그의 단편영화 <염소가족>은 벤쿠버 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등 세계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감독 신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