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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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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4월 딸깍발이 생각 2018.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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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서

시간에 대한 관념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밥 먹듯이 하는 말이 “시간이 없다”, “시간은 돈이다“이다. 그런데 정작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뭔가 확인하고 싶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존재하며, 늘 우리 곁에 있다. 

혹시 오늘 퇴근하면서 당신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오늘은 하루를 너무 가치 없게 보냈어.“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오늘도 역시 가지 않았고, 일을 핑계로 스포츠 센터에 가지 않았고, 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추진 중인 회사 업무의 획기적인 안을 만들지도 못하고....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가치가 없다는 것이 곧 의미가 없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오늘 하루‘는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시간’에 대한 부분이다. 가치는 합리주의자들에게 있어 절대적 용어이지만 가치가 ‘의미‘라는 차원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강박 중 하나가 어떤 행동을 하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합리성은 근대를 만든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것이 ‘목적 합리성’으로 변질되면서 우리는 과정의 합리성을 버리고 오직 결과를 통한 최종 합리성만을 신봉하게 되었다. 

  같은 결론이 나오더라도 다른 회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리의 것이 더 좋은 결과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조건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회귀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욱 스스로 괴롭힌다. 더 합리적으로 살아야한다고.

  이런 잘못된 합리성에 가속도가 붙은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현대인은 잘못된 ‘시간’의 개념을 추가하였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스스로의 목을 더 죈다. 우리에게 시간은 시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성을 잃어버린 시간- 

  태초에 시간과 함께 영원성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의 분석을 영원성의 배경에서 떼어냄으로써 그 모순적인 특성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사람들은 영원성을 잃어버리거나 떼어냄으로써 더욱 시간에만 목을 매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 고민한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지적이기도 하다.

  그가 <시간과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시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시간 개념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시간의 인식론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로가 시계를 처다 보며 느끼는 객관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천천히 흐르며, 누군가는 시간이 돈이라고 규정 짓는다. 이처럼 나의 주관적 심리상태로 느끼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하고, 물리적 시간 혹은 객관적 시간을 크로노스(kronos)라고 부른다. 

  우리는 시간을 영원성의 개념에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주어진 ‘시간‘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의 현대인들이 되어가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완‘은 오직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소비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무엇으로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이완’은 나태하고 게으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이완’을 느끼기 위해 미치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이완’의 시간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긴장과 이완-

  더 큰 ‘긴장’을 소비하면 그 뒤에 더 큰 ‘이완’이 따라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고 싶다는 욕구를 채워도 우리는 다시 ‘이완‘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라깡의 이론처럼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나머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상 ‘긴장’ 상태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긴장을 뭔가 우리에게 떼어내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긴장과 이완이 하나의 같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긴장을 밀어내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 자체의 시간을 의미 있게 ‘느낄 것‘이다. 

  이완이 긴장에 대한 시간을 소비하고 난 다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완도 시간의 흐름에 같이 존재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시간을 소비의 개념에 견주는 것은 ‘시간은 돈‘이라고 생각하며, 영원성이 없는, 언젠가 소멸될 무엇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계로 보면 우리의 시간들은 잡을 수 없을 것처럼 휙휙 지나가지만, 아날로그의 시계로 보면 시간은 계속 영원이 돌고 있다. 계절도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4계절은 다시 우리에게 돌고 또 돌아온다.

  영원성을 제외시킨 시간 속에 살고 있다면, <시간의 향기>의 저자 한병철의 지적처럼 ‘느리게 살기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한병철은 ‘활동적 삶‘에서 ‘사색하는 삶‘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색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의 원인이 ‘활동적 삶‘ 때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유는 활동하는 삶 역시 원인이 아닌 하나의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일까. 필자는 그에 대해 ‘가치를 쉽게 얻고 ‘의미’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의 중심에 대한 상실은 활동적 삶에 대한 가치의 부여 때문이 아니다. 목적 합리성 과정에서 우리는 ‘가치’를 쉽게 얻고 ‘의미’를 버렸다. 그 의미는 과거의 시간이 우리 전체의 시간임을 잊어버리고 상실할 때 형성된다. 

-과거를 통한 의미의 발견- 

  한병철이 이야기한 ‘시간의 원자화‘ 또한 이것이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우리가 가치라는 것을 합리성에 놓아주고 그 합리성은 과정을 잃어버린 채 목적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를 잘못된 목적 합리성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의미‘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대한 논리는 오직 현재 중심에 있으며, 그 현재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지 못한, 붕붕 떠다니는 현재만 존재하는 것이 요즘이다. 그렇다고 현재 중심의 과거와 미래의 연결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아주 객관적인 상황에서는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의 측면에서 보면 속도가 빠른 곳에서는 속도가 느린 곳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보면 중력이 센 곳에서 약한 곳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어찌되었건 쉽게 말해 약 30만km/s의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과거에 사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미래지향적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도 과거의 분석과 해석이 제대로 이루지 못한 무엇에 불과하다. 때문에 과거는 과거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는 무엇인가? 과거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색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이 과정을 필자는 ‘사색하는 삶’으로 보고 싶다. 현대인들이 시간에 얽매여 사는 이유는 이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의 시간을 갖지 않고 미래로 나가려하기 때문에 예측이 맞아 떨어져도 자신의 이해과정이 없는 대상에 대한 예측들은(그것 또한 과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자신의 존재적 불안에 대한 인식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정말 객관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걸까. 카를로 로벨리는 자신의 중심에서 결정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때문에 과거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을 가지려고 스스로에게 노력하자. 누구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고 누구는 과거에 뒤쳐져 사는 실패자가 아니라 모두 과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럴 때 사색의 삶은 ‘의미‘를 만들고 ‘가치‘를 놓치지 않게 된다. 그 가운데 우리는 오늘 퇴근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오늘도 고생 많았어”라고 진정한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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