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이야기] 커피의 가치 이해하기

어느 날 갈증이 나서 지인이랑 편의점에 들려 음료 하나를 집었다. 종류별로 즐비하게 정리된 음료들 중 하나를 골라 계산을 마치고는 얼른 캔을 따서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사과 맛 탄산음료를 들었고 지인은 콜라를 집었다.

내가 “제가 어릴 적에는 사이다나 콜라 밖에 없었는데 참 다양해졌네요.”라고 말하자 지인은 조금 열없는 듯 웃으며 “그래 봤자 모두 청량음료인 걸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머릿속에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가끔 거릴 거닐다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다국적 기업의 카페들을 바라보면 왠지 그때 지인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사람들은 매일 새롭게 출현하는 거대한 카페 시장 속에서 오늘은 어디로 갈까 라는 ‘선택의 다양성’에 대해 기뻐할지 모르나 사실 우리의 선택은 컨벤셔널 커피(conventional coffee) 안에 갇힌, 제한된 선택일 때가 잦다.

물론 최근에는 제한된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다국적 기업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메뉴에 추가하거나 아예 콘셉트(concept)가 다른 프리미엄 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경우 ‘커피의 가치’보다는 ‘카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치중하고 있다.  

우리도 사실 생각해보면 커피의 가치보다는 카페의 가치를 보고 카페를 이용할 때가 많다. 커피의 가치와 카페의 가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또 가치란 무엇인가?

우리생활에서 욕구(need)를 충족시키려 하는 ‘과정 중의 작동’(우리는 욕망을 채울 수 없는 결핍된 존재의 가정아래)을 가치로 설명한다면 가치의 평가방식은 어떻게 진행될까. 상품에 대한 가치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상품이 매우 훌륭한 가치가 있다면 그 상품은 그 가치를 가장 잘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현재 우리 삶에서 그 인정의 방식은 재화를 가장 많이 지불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매우 훌륭한 커피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그에 대해 가장 많은 재화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옥션(auction)’이다. 실재 커피 시장에서 매우 좋은 스페셜티가 나올 때 그 커피는 경매의 방식을 통해 그 안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급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가장 많은 돈을 지급한다고 우리는 가장 좋은 커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치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오인하는 것이 카페의 가치를 커피의 가치로 등치시켜 생각한다는 점이다.  

큰 기업에서는 카페 즉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벤트나 광고 등의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 각종 인테리어 비용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매우 상위 품질의 좋은 커피를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러면 최종 소비자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소비자들은 이 두 개가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목적이 커피가 아닌 다른 경우다. 예를 들어 카페 주인에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넓은 실내 공간의 이용을 위함이라든지 단순히 접근성이 용이한 부분 때문이든가 아님 브랜드 이미지가 주는 베블런효과(veblen effect) 등 때문에 커피의 가치보다 카페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 또 카페는 커피만을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이드메뉴를 먹기 위해 갈 수도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커피라는 부분만을 놓고 말했을 때의 경우다.  

대부분 첫 커피 강의 시간에 묻는 나의 질문은 ‘여기 왜 왔느냐’로 시작한다. 그러면 귀결되는 대답이 결국 커피의 가치를 알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매일 하루 한 잔 이상 사먹는 커피에 자신이 지불하는 비용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고, 자신이 마시는 커피가 정말 맛있는 커피인지 궁금하여 시간을 쪼개어 커피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한정된 경우가 많다. 대형 놀이기구 시설에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골라 타면서 우리는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그 담장 밖에 있는 더 많은 놀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커피도 선택하는 부분이 매우 제한된 영역 아래서 그 가치를 논하고 있을 때가 잦다. 제한된 영역을 누군가 뛰어넘기 시작하면 그 영역은 매우 크게 확장될 수 있으나 제한된 영역을 뛰어넘기는 수고스럽고 지루하며 많은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만약 그 높은 담장 밖을 넘기 힘들다면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대해 ‘반응’이 아닌 ‘이유’를 알고 다가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비싸지 않은 합리적 가격의 커피를 만났다면 그 가격에 맞는 가치를 최대한 누리길 바라며, 만약 비싼 가격을 주었다면 그 만한 가치가 있는지 또는 그 가치가 자신의 목적성과 일치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커피의 맛을 원했는데 혹 커피의 이미지를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단순히 커피의 이미지를 마시고 싶었는데 너무 지나치게 큰 비용을 지불하며 커피 맛에 비용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찾는 일상의 작은 행복인 커피 한 잔에서도 그 가치가 최대한 발휘되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조금이나마 위안과 기쁨이 되는 커피이길 바란다.

△글=김정욱 現 딸깍발이 코퍼레이션 대표. 現 커피비평가협회 한국본부장.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베스트 컵 콘테스트 심사위원(2015 BCC)

출처 : 이데일리 2015.05.10